Ⅰ. 서론
국악교육은 음악교과서에서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음악교사의 국악에 대한 이해 부족과 현장에 있어야할 시청각 교재의 미비함으로 인하여 국악교육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국악교사
2) 기원
조선의 종묘가 이룩된 것은 1395년이며 이 때의 종묘제례악에는 당악·향악·아악 등을 두루 써왔다. 1425년 세종대왕은 친히 종묘에 제향하고 환궁한 뒤 이조판서 허조에게 "종묘대제에 먼저 당악을 쓰고 겨우 종헌에서야 향악을 쓰니 앞으로는 조고 신령께서 생시에 익히 들으시던 향악으로 아
-중국 상고시대에 기원을 둔 음악
-송나라 아악이 고려에 전해진 후 조선 세종 때에 아악을 정비하여 궁중의 제례와 조회음악을 새로 만들었지만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현재는 문묘제례악만 남음
-중국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음
-황종궁
-영신례의 12곡은 황종궁을 원곡으로 하
시조 등 정악, 불교의 범패, 무속의 굿 등 종교음악 등 크게 네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각 음악장르들은 물론 한국음악의 공통적인 특징 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한국음악은 날카롭고 자극적인 음색을 배제하고 대체로 편안하고 유순한 느낌의 음색을 선호 한다. 서양악기 중에는 금속
범패는 승려, 시조나 가사는 전문적인 소리꾼, 판소리는 광대와 같은 전문가에 의해 불려졌지만 그러나 민요는 비전문가인 민중에 의하여 불려진다. 민요는 민중에 의하여 널리 불릴 뿐만 아니라 성격과 기능도 민중의 생활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폭넓게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자유롭게 개작되면서
범패’, 고려와 조선시대 양반들이 부르던 ‘가곡’을 말한다. 가곡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불리며 전해져 내려왔지만 가곡이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한 시기는 16세기 중반부터였다. 특히 조선 선조 때 발간한 <금합자보>에는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가곡의 악보와 노랫말, 선율 등 악기정보가 실려있
시조의 초기 형태가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경기체가와 시조는 조선왕조 이후에 본격적 발전을 이룬 시가 형식이므로, <태평곡> 이하의 신곡들을 중심으로 귀족 작가의 창작 가요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러한 창작 가요를 다시 신하의 처지에서 군주를 송도하는 <風入松(풍입송)>.(夜深詞
범패(梵唄)의 바깥채비 소리에 쓰이는 태평소·징·북·목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다시 절 걸립패의 꽹과리·징·장구·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놀이와 굿의 성격을 띠고 있는 풍물은 쇠, 징, 장구, 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사람들의 잠재적 신명을 자극해 신명의 판을
주요 대상이 되기도 함)
CHAPTER 3
지리산과 ‘융합’
고유신앙
성모신앙
남악사(박혁거세의 어머니를 모신 성도성모)에서 유래.
지모신신앙을 바탕으로 성립
산신신앙
우리 조상의 오래된 신앙
불교 전래와 함께 불교사상에 융합
(ex. 법우 ‘무당의 시조’ 이야기, 석장승의 위치)
지리산 성모상
범패(梵唄)와 아울러 불교음악이라는 점에서 잡가와 각각 구별된다. 사설은 대개 4 ·4조가 주가 되나 파격이 심한 것이 특징이다. 잡가는 그것이 불리는 지역과 지방적인 가락토리(鄕調)에 따라 경기잡가 ·남도잡가로 구분되며, 경기잡가는 다시 십이잡가(十二雜歌)와 휘몰이잡가로 나뉜다.
♡ 잡가(歌